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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 거두는 '전문심리위원제'
실효 거두는 '전문심리위원제' 대법원 시행 2년째, 전국 법원 민사·행정소송 절차서 212건 도움받아 상속을 둘러싸고 형제들이 벌인 민사소송으로 재판부가 골머리를 앓았다. 이들이 서로 다른 계산법에 기초해 세금금액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마침내 양측 의견을 물어 세무사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 평소 여러사건을 해봐서 세금문제에 누구보다 식견이 높은 이 세무사의 조언으로 소송은 다행이 조기에 종결됐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느 계산법이 옳은지에 대해 감정을 해야 해 재판이 장기간 지연될 뻔했다. 또 어느 재판부는 종묘배양장 운영업자가 도로공사 시행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전문심리위원을 활용했다. 도로공사로 종묘배양장에 토사가 유입되고 소음과 진동으로 배양하던 어패류가 폐사했다며 낸 소송에서 원·피고는 영업손실범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섰다. 재판부는 해양·환경오염사고 전문가를 심리위원으로 재판에 참여시켜 재판도중 의문사항에 대해 곧바로 도움을 구했다. 또다른 재판부는 도메인 광고와 관련한 소송에서 전문심리위원의 도움을 받았다. 클릭수에 따라 광고비를 지급하기로 약정했으나 부정한 방법으로 클릭수를 늘여 광고비를 뻥튀기 했다며 원고가 주장하는 광고비 청구를 피고가 거부한 사건이었다. 재판부는 전산전문가를 재판에 참여시켜 쟁점정리단계부터 사실관계 인정에 이르기까지 큰 도움을 받아 재판을 신속히 끝냈다. 이처럼 민사나 행정재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도입된 전문심리위원제도가 시행 2년째에 접어들면서 점차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홍보를 강화하고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는 등 활성화를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심리위원제도는 의료, 건축, 지적재산권, 첨단산업, 금융조세, 환경 등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소송절차에 참여시켜 법관이 그 설명이나 의견을 듣는 등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감정제도에 비해 신속한 재판에 도움이 되고 소송비용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법원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000여명 가량을 선정해 전문심리위원 풀(pool)제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의사에서 아동심리상담사에 이르기까지 판사가 재판을 하면서 필요로 할 가능성이 있는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이 망라돼 있다. 지난해 8월 민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제도가 시행된 이후 올 9월까지 전국 법원에서 전문심리위원들이 소송절차에 참여해 재판에 도움을 준 사례는 모두 212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감정인보다 신속·저렴"=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해 재판을 한 경험이 있는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감정인의 도움을 받으려면 수백만원의 감정비용이 들어 당사들에게도 부담이 될 때가 많다”며 “감정인들의 경우 일단 감정서를 내고 나면 재판 때 도움을 받기 위해 출석을 요청해도 잘 나오려고 하지 않아 전문지식이 필요할 때 즉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문심리위원의 경우 쟁점정리단계부터 도움요청이 가능하고 법정에 출석해 수시로 재판부와 양당사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 원·피고가 몰랐던 부분이 이 과정에서 현출돼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는 등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어차피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하다면 감정제도를 활용하면 될 것을 굳이 전문심리위원을 활용하는 것은 절차의 중복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으나 전문심리위원과 감정인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며 “특히 전문심리위원은 신속성과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성을 갖기 때문에 재판부가 마음껏 활용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밑그림, 즉 쟁점이 어떤 것이고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등에 대해 사전에 전문심리위원으로부터 배경지식을 보충받은 후 감정인을 통해 필요한 부분만 감정받는 식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며 “그럴 경우 부담이 큰 감정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어 당사자에게 좋다”고 말했다. 전문심리위원에게 주는 비용은 법원이 부담하기 때문에 감정인위촉과 결과는 거의 근접하면서도 비용부담은 거의 없어 일석이조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판사는 “전문심리위원은 공급자의 측면에서도 다른 제도에 비해 이점이 많다”며 “조정위원은 하루 조정에 참여하면 7만여원을 받는데 비해 전문심리위원은 1사건 당 최대 200만원까지 받을 수 있고 전문가들의 경우 하루 쉰다는 생각으로 재판에 참여해 조언을 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전문성 뛰어나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전문심리위원을 7번 지정해 재판을 한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위암수술과 관련해 분쟁이 된 사건에서 위암수술 전문의를 전문심리위원 목록에서 찾아보니 무려 6명의 위암수술 전문의가 선정돼 있었다”며 “위원을 최종적으로 지정할 때는 양당사자의 의견을 참고해야 하는데 양측에서 반대하는 2명을 제외해도 4명이 남아 전문심리위원 지정하는데 전혀 애로사항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문심리위원의 도움은 법정에서 혹은 판사실에서 받을 수 있다”며 “한 전문의는 내부기관의 신체모형물을 갖고와 판사실에서 양당사자와 법관에게 수술과정과 관련한 상세한 설명을 해줘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90년대만 해도 재판과정에 전문가가 필요한 경우가 드물었으나 점점 인터넷, 과학기술 등 전문분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제는 재판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없이는 용어자체도 알 수 없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며 “전문심리위원을 활용해보면 굉장히 좋다는 걸 금방 알 수 있고 또 보다 신속하게 사실심리에 충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증거로 채택가능해야” “홍보부족-조정위원과 혼동해”= 현재 규정상 전문심리위원의 진술·설명이나 의견은 증거로 채택할 수가 없다. 또 다른법원의 한 판사는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이 감정인의 감정서와 상충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런데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은 증거로 삼을 수가 없어 난감할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판에 직접 출석한 전문심리위원으로부터 생생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법관이나 양 당사자 모두 전문심리위원의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 여겼음에도 증거로 채택할 수가 없었다”며 “그와 반대로 서류로만 제출된 감정서는 신뢰가 가지 않아 이럴 경우 어떻게 조절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어떤 의료사건에서 전문심리위원 활용을 양측 대리인에게 제안하자 조정위원으로 착각해 심하게 거부하기도 했었다”며 “조정위원의 경우에는 의사편을 든다는 인식이 있는데 전문심리위원제도 자체를 몰라 혼동을 빚어 선정에 애를 먹었지만 후에 경험하고서는 당사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판사뿐만 아니라 변호사들에게 홍보가 부족한 만큼 각 법원의 활용사례를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해 재판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전국의 법관 31명은 지난달 31일 대법원 404호에서 열린 ‘전문심리위원제도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에 참석해 각자의 활용사례를 공유하고 시행 1년2개월째를 맞은 전문심리위원제도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김소영 기자 irene@lawtimes.co.kr Copyright (c) The LawTimes All rights reserv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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