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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신청률은 낮고 철회·배제율 높다
국민참여재판, 신청률은 낮고 철회·배제율 높다 시행 8개월 분석, 대상사건 1,275건 중 고작 5.5%만 배심평결 국민들의 큰 기대를 안고 출발한 국민참여제도가 시행 8개월을 맞았지만 법원이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다. 대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참여재판 대상사건 1,275건 가운데 실제 참여재판을 통해 판결이 난 사건은 5.5%인 23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도도입 논의과정에서 시행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간 100~200건을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 대상사건 10건 중 한 건 미만으로 신청= 현재 국민참여재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낮은 접수율과 높은 철회·배제율에 있다. 올해 1월부터 6월 사이 전체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수는 1,275건에 달했지만 이중 국민참여재판이 신청된 것은 8.9%에 불과한 114건에 그쳤다. 10건 중 1건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그나마도 37건은 피고인 스스로가 철회했고, 30건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배제결정을 해 참여재판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때문에 실제 참여재판으로 연결된 사건은 전체 신청건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7건에 불과했다. 법원별로는 제주지법이 전체 대상사건 16건 중 4건이 신청돼 25%의 신청률을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높았으며 춘천지법이 51건 중 9건(17.6%), 부산지법이 116건 중 19건(16.4%)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의정부지법은 전체 대상사건 61건중 3.3%에 해당하는 2건만이 신청돼 전국 법원 중 가장 낮은 신청률을 보였고 전주지법이 54건 중 2건(3.7%), 대전지법 99건 중 4건(4.0%), 서울중앙지법이 89건 중 4건(4.5%)으로 저조한 신청률을 보였다. ◇ "참여재판 실익없다는 인식 강해"= 이처럼 국민참여재판이 기대와 달리 저조한 실적을 보이는 이유는 신청당사자인 피고인 스스로 참여재판을 통해 얻을 실익이 없다는 인식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철회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유를 물어보면 국선변호인 신청처럼 일단 해두는 것이 좋은 줄 알았는데 참여재판을 한다고 해도 유리할 것이 없어 보여 철회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면서 "당사자들이 '재판에 일반인들이 배심원으로 참석해 자기 잘못이 알려지고, 여론이 관심을 갖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하는 등 국민정서적인 측면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형사재판에 관여하는 검사와 변호사의 소극적인 태도도 신청률 저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부장판사는 "국민참여재판을 하게 되면 공판검사 뿐만 아니라 수사검사도 직접 법정에 나와야하는 등 업무가 일반 재판에 비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피고인 입장에서는 이런 이유로 참여재판을 신청할 경우 검사가 자신을 밉게 생각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며 "양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피고인들 입장에서는 검사들이 싫어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상 참여재판을 신청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참여재판을 막상 신청했더라도 상담과정에서 '참여재판을 신청해도 특별히 유리한 측면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변호인 때문에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고 전했다. 중견로펌의 한 변호사도 "국민참여재판 대상범죄는 주로 중죄 범죄이기 때문에 전관들이 많이 맡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그동안 전화를 하거나 서면 제출을 하는 식으로 재판을 맡아왔던 업무스타일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라 배심원들에게 말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변호사들 입장에서도 전관의 힘이 약해지는 국민참여재판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참여재판이 이뤄진 23건 중 74%에 해당하는 17건의 변호인이 국선변호인이었다. 법원 역시 제도시행 후 의정부지법을 비롯해 서울동부, 남부, 북부, 대전지법 등 5개 법원에서 한 번도 참여재판이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피고인들 인식변화 필요"= 지난주 열린 법률가대회때 한 검사는 이같은 통계결과를 근거로 "참여재판제도가 이미 실패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낙관론이 우세하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국민들의 대다수인 97.2%가 배심원 직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배심원 참여를 통해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줄어들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법률가들은 저조한 신청률을 참여재판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로 받아 들이면서 "지금은 제도개선에 지혜를 모야야 할 때"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법조인들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피고인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상훈 연세대법대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제도 정착방안'에서 "신청주의로 돼 있는 현 제도를 바꿔 배심원재판을 원칙으로 하되 피고인이 배심원재판을 포기하거나 희망하지 않는 경우 일반재판으로 진행하도록 한다면 신청인들의 심리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재판을 받을 경우 피고인이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변호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1~2일간 집중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피고인 입장에서는 일반 재판보다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5~6배 가량 늘어난다는 것을 법원이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상사건이 주로 살인, 강도상해, 성범죄에 국한돼 참여재판이 저조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국민참여재판에 필요한 인적, 물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상사건을 지나치게 확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막기위해 대상범죄를 제한했지만 이렇게까지 참여율이 낮을 것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부 법관은 "강력범죄만으로도 사건이 넘칠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다"며 "이대로 가면 국민들이 제대로된 국민참여재판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제도가 사장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상사건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 대법원규칙을 개정해 배심원들이 비교적 판단하기 쉬운 사기, 횡령, 배임 등의 재산범죄를 위주로 대상을 확대할 경우 현재의 저조한 신청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충분한 법률조언도 필요하다.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피고인들이 어떤 식으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되는지 잘 알지 못한 채 들리는 소문이나 주변의 의견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신청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충분한 법률조언을 해준다면 철회율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선변호인 수를 늘려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재판과정에서 검찰측은 공판검사, 수사검사가 각각 1명씩 나와 2명이 재판을 진행하지만 국선변호인의 경우는 1명이 재판에 참여한다"며 "검사와 변호인 간의 수적 불균형을 개선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시행 8개월밖에 안 된 상황에서 비관론을 제기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며 "점차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참여재판의 경험이 쌓이면 기술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어떤 제도라도 올바르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lawtimes.co.kr Copyright (c) The LawTimes All rights reserv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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