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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8)형법 각칙
[2007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8)형법 각칙 신동운 교수(서울대 법대) 2007년에 공간되거나 선고된 형사판례 가운데 형법가칙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들을 골라서 아래에 소개하기로 한다. 1. 범인의 교사행위와 범인도피죄 (2006. 12. 7. 2005도3707, 공 2007, 156) 1) 사실관계 갑은 무면허 상태로 운전하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 된 갑은 무면허 운전사실이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동생인 을에게 대신 교통사고를 냈었다고 진술하여 조사를 받도록 하였다. 2) 사건의 경과 검사는 갑을 범인도피교사죄로 기소하였다. 갑의 피고사건은 제1심을 거쳐 항소심에 계속됐다. 항소심법원은 ① 범인도피를 교사한 피고인은 범인 본인이어서 구성요건해당성이 없고, ② 피교사자 역시 범인의 친족이어서 불가벌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이 타인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범죄를 실현하고, 새로운 범인을 창출하였다는 교사범의 전형적인 불법이 실현됐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③ 피고인이 자기방어행위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하거나 방어권의 남용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워 공소사실은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검사는 항소심판결에 불복, 상고했다. 3) 판결 요지 그러나 범인이 자신을 위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해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행위는 방어권의 남용으로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하는바(대법원 2000. 3. 24. 선고 2000도20 판결 참조), 이 경우 그 타인이 형법 제151조 제2항에 의하여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친족, 호주 또는 동거 가족에 해당한다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파기 환송). 4) 판례의 의의 본 판례에서 대법원이 판시한 사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범인 스스로 타인에게 교사하여 자신(범인)을 도피하도록 한 행위는 범인도피교사죄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판례는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대법원의 태도는 타인을 범인도피죄의 정범으로 보고 정범(타인)의 범죄행위에 교사범(범인)이 가담한다는 논리구조에 입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범은 구성요건의 수정형식이므로 일단 구성요건해당성을 인정한 다음 위법성 판단을 거쳐 책임단계에서 기대가능성의 문제를 논하게 된다. 이 점과 관련해 항소심법원은 범인도피교사행위가 방어권의 남용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배척하고 방어권의 남용을 인정해 기대불가능성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본 판례에서 주목되는 다른 하나는 친족간의 특례에 대한 법적 성질이다. 형법총칙 주요판례에서 소개한 것처럼 2007. 11. 29. 2007도7062 판례에서 대법원은 친족간의 특례를 책임조각사유로 파악하고 있다. 만일에 그렇다면 본 판례에서 대법원이 “이 경우 그 타인이 형법 제151조 제2항에 의하여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친족, 호주 또는 동거 가족에 해당한다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부분에 의문이 생긴다. 정범(본 사안에서 타인)에게 책임이 조각될 경우에 교사범(본 사안에서 범인)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제한적 종속형식과 극단적 종속형식이라는 두 가지 접근방법이 제시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제한적 종속형식에 따르면 정범의 책임조각에 관계없이 교사범을 처벌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극단적 종속형식에 따르면 정범에게 책임이 조각되기 때문에 교사범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본 판례를 두고 대법원이 암묵적으로 제한적 종속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밝힌 사례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친족간의 특례는 입법자가 정책적 관점에서 설정해 둔 인적 처벌조각사유로 파악해야 한다. 인적 처벌조각사유는 객관적 처벌조건과 마찬가지로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이라는 범죄성립 3요소 이외에 예외적·정책적으로 설정되는 제4의 요건이다. 그렇게 본다면 본 판례에서 정범이 친족간의 특례에 근거하여 처벌을 면하더라도 극단적 종속형식의 관점에 서서 교사범을 처벌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2. 업무상 과실치상ㆍ치사죄와 낙태죄의 관계 (2007. 6. 29. 2005도3832, 공 2007, 1222) 1) 사실관계 갑의 조산원에 을녀가 출산을 위해 입원하였다. 입원 당시 을녀는 임신성 당뇨증상 및 이미 두 번의 제왕절개 출산 경험이 있는 37세의 고령의 임산부였고, 분만예정일을 14일이나 넘겨 태아가 5.2㎏까지 성장한 상태였다. 의학적으로 자연분만이 부적절하여 제왕절개 수술이 유일한 출산방법이었으나 갑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태아는 사산(死産)됐다. 2) 사건의 경과 검사는 태아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임부 을녀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는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기소하였다. 갑의 피고사건은 제1심,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 이른 후 파기환송됐다. 환송 후 항소심은 업무상 과실치사죄와 업무상 과실치상죄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환송 후 항소심판결에 불복해 재차 상고했다. 검사는 상고이유로 ①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 임산부의 상태변화, 의료진의 처치경과 등 제반 사정을 토대로 ‘의학적으로 제왕절개수술이 가능했고 규범적으로 수술이 필요하였던 시기’를 사후적으로 판단해 이를 분만의 시기로 볼 수 있으며(업무상 과실치사죄 부분), ② 태아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임산부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는 것이며, 태아의 사망으로 인하여 그 태아를 양육, 출산하는 임산부의 생리적 기능이 침해돼 임산부에 대한 상해가 된다고 주장했다(업무상 과실치상죄 부분). 3) 판결 요지 1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는 형법의 해석으로는 규칙적인 진통을 동반하면서 분만이 개시된 때(소위 진통설 또는 분만개시설)가 사람의 시기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함은 종래 대법원이 취해 온 견해이다(대법원 1982. 10. 12. 선고 81도2621 판결, 1998. 10. 9. 선고 98도949 판결 등 참조). (중략) ‘의학적으로 제왕절개수술이 가능했고 규범적으로 수술이 필요하였던 시기’는 판단하는 사람 및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어, 분만개시 시점, 즉 사람의 시기도 불명확하게 된다는 점에서 채용하기 어렵다. 4) 판결 요지 2 현행 형법이 사람에 대한 상해 및 과실치사상의 죄에 관한 규정과는 별도로 태아를 독립된 행위객체로 하는 낙태죄, 부동의 낙태죄, 낙태치상 및 낙태치사의 죄 등에 관한 규정을 두어 포태한 부녀의 자기낙태행위 및 제3자의 부동의 낙태행위, 낙태로 인해 위 부녀에게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 등에 대하여 처벌하도록 한 점, 과실낙태행위 및 낙태미수행위에 대하여 따로 처벌규정을 두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보면, 우리 형법은 태아를 임산부 신체의 일부로 보거나, 낙태행위가 임산부의 태아양육, 출산 기능의 침해라는 측면에서 낙태죄와는 별개로 임산부에 대한 상해죄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해석된다(상고 기각). 5) 판례의 의의 본 판례의 사실관계를 보면 검사는 조산사 갑을 업무상 과실치사죄 및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기소하고 있다. 조산사의 부주의로 태아가 사산에 이르게 된 상황에 대하여 형법적 개입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낙태죄는 고의범이므로 이의 적용을 구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사람’을 중심으로 규정된 업무상 과실치사죄 및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갑을 기소한 것이다. 검사는 기소의 타당성을 입론하기 위하여 앞의 사건의 경과에서 소개한 두 가지 상고이유를 통해 ‘사람(태아)의 사망’과 ‘사람(산모)의 상해’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위의 판례요지에 소개된 논지에 따라 검사의 두 가지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있다. 출산 직전의 상황은 태아의 생명에 대한 위험성이 고도로 높아지는 시점이다. 출산 직전의 상황에 대비하여 검사가 제기하는 형법적 규제의 필요성은 수긍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된 입법적 보완책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해석론의 관점에서 보면 대법원이 판시한 바와 같이 현행 형법의 관련규정으로는 출산 직전의 위험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해석론의 차원에서 볼 때 대법원이 제시한 진통설 내지 분만개시설이 그 자체로 충분한가 하는 의문이 있다. 판례에 따르면 소위 무통분만을 위한 제왕절개수술의 경우에 형법적 보호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제왕절개수술의 경우에는 집도에 임하게 되는 시점부터 태아를 규범적으로 ‘분만 중의 태아’로 보아 ‘사람’으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검사가 주장하는 바 ‘의학적으로 제왕절개 수술이 가능했고 규범적으로 수술이 필요하였던 시기’를 사람의 시기(始期)로 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왕절개수술의 ‘집도’에 주목하는 것은 수술의 ‘필요성’에 비해 명확하고도 객관적인 기준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3. 협박죄와 미수범의 성립범위 (2007. 9. 28. 2007도606 전원합의체판결, 공 2007, 1726) 1) 사실관계 A는 대학설립 추진과 관련하여 대학부지 내 택지 및 상가지역 분양 명목으로 B로부터 받은 돈을 변제하지 못해 독촉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C경찰서 정보보안과 소속 경찰공무원인 갑은 A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C경찰서 정보과에 근무하는 ○○○형사다. B가 집안 동생인데 돈을 언제까지 해 줄 것이냐. 빨리 안 해주면 상부에 보고해 문제를 삼겠다”라고 말하였다. 2) 사건의 경과 갑은 협박죄로 기소되었다. 갑의 피고사건은 제1심을 거쳐 항소심에 계속됐다. 항소심의 공판절차에서 A는 갑의 전화가 전혀 두렵지 않았었다고 증언했다. 항소심법원은 갑에게 협박죄의 기수범을 인정하였다. 갑은 항소심판결에 불복, 상고했다. 대법원은 의견이 나뉘었다. 다수의견(9인)은 협박죄를 위험범으로 봐 갑에게 협박죄의 기수범을 인정하였다. 이에 대해 소수의견(3인)은 협박죄를 침해범으로 봐 갑에게 협박죄의 미수범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다수의견 요지 1 협박죄가 성립되려면 고지된 해악의 내용이 (중략)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할 것이지만, 상대방이 그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것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그와 같은 정도의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상대방이 그 의미를 인식한 이상,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로써 구성요건은 충족되어 협박죄의 기수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4) 다수의견 요지 2 우리 형법은 제286조에서 협박죄의 미수범을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으나 미수범 처벌조항이 있다 하여 반드시 침해범으로 해석할 것은 아니며, 지극히 주관적이고 복합적이며 종종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걸쳐 있는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객관적으로 심리ㆍ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상대방이 과거 자신의 정서적 반응이나 감정상태를 회고하여 표현한다 해도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의 의미나 판단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며 그 정도를 측정할 객관적 척도도 존재하지 아니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에 따라 기수 여부가 결정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아니하기 때문이다(상고 기각). 5) 판례의 의의 우리 형법은 제286조에서 협박죄의 미수범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이 부분은 의용형법(일본형법)이 미수범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던 것과 대비된다. 우리 형법의 미수범 처벌규정에 대해 학설상 침해범설과 위험범설이 대립하여 왔다. 침해범설에 의하면 피협박자가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을 때 협박죄는 기수에 이르게 된다. 이에 대하여 위험범설에 의하면 피협박자가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는가에 관계없이 협박죄의 기수범을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학설대립에 대해 대법원은 본 판례를 통해 위험범설의 지지를 분명히했다. 본 판례에서 주목되는 것은 협박죄의 미수범이 성립하는 경우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① 해악의 고지가 현실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지 아니한 경우, ② 도달은 하였으나 전혀 지각하지 못한 경우, ③ 고지된 해악의 의미를 상대방이 인식하지 못한 경우의 세 가지 상황을 들고 있다. 이 가운데 ③의 경우는 해악의 고지가 도달하여 상대방이 이를 지각하였으나 그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다. 예를 들자면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나 사투리로 해악을 고지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4. 현금카드 인출행위와 절도죄 (2007. 5. 10. 2007도1375, 공 2007, 930) 1) 사실관계 갑은 A로부터 강취한 현금카드를 현금자동지급기에 넣고 A를 협박해 알아낸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현금을 인출했다. 검사는 갑의 현금인출행위를 절도죄로 기소했다. 갑의 피고사건은 제1심을 거쳐 항소심에 계속됐다. 항소심법원은 예금주인 현금카드 소유자를 협박해 그 카드를 강취했고, 하자있는 의사표시이기는 하지만 피해자의 승낙에 의해 현금카드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아 이를 이용해 현금을 인출했다고 판단해 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이에 불복, 상고했다. 2) 판결 요지 1 예금주인 현금카드 소유자를 협박해 그 카드를 갈취한 다음 피해자의 승낙에 의해 현금카드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아 이를 이용해 현금자동지급기에서 현금을 인출한 행위는 모두 피해자의 예금을 갈취하고자 하는 피고인의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행위로서 포괄해 하나의 공갈죄를 구성한다고 볼 것이므로, 현금자동지급기에서 피해자의 예금을 인출한 행위를 현금카드 갈취행위와 분리하여 따로 절도죄로 처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대법원 1996. 9. 20. 선고 95도1728 판결 등 참조). 왜냐하면 위 예금인출행위는 하자있는 의사표시이기는 하지만 피해자의 승낙에 기한 것이고, 피해자가 그 승낙의 의사표시를 취소하기까지는 현금카드를 적법,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은행으로서도 피해자의 지급정지 신청이 없는 한 그의 의사에 따라 그의 계산으로 적법하게 예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판결 요지 2 그러나 강도죄는 공갈죄와는 달리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로 강력한 정도의 폭행ㆍ협박을 수단으로 재물을 탈취해야 성립하는 것이므로, 피해자로부터 현금카드를 강취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피해자로부터 현금카드의 사용에 관한 승낙의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 따라서 강취한 현금카드를 사용하여 현금자동지급기에서 예금을 인출한 행위는 피해자의 승낙에 기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현금자동지급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지배를 배제하고 그 현금을 자기의 지배 하에 옮겨 놓는 것이 되어서 강도죄와는 별도로 절도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7. 4. 13. 선고 2007도1377 판결 참조)(파기 환송). 4) 판례의 의의 본 판례는 타인의 현금카드를 이용한 현금인출행위와 절도죄의 성립 여부에 관한 것이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를 대비시켜서 ① 공갈죄의 경우에는 절도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② 강도죄의 경우에는 절도죄의 성립을 긍정한다는 기준을 재확인하고, 이를 통해 하급심의 판단에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5. 사기죄의 이득액과 가중처벌 (2007. 4. 19. 2005도7288 전원합의체판결, 공 2007, 923) 1) 사실관계 갑은 A은행에서 B대지를 담보로 대출받기로 약정한 바 없고 잔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그러한 약정이나 능력이 있는 것처럼 C를 기망하여 B대지를 취득했다. B대지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의 시가는 16억 4,600만원이고, B대지에 설정된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은 10억 2,000만원이었다. 한편 B대지와 관련한 피담보채권은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을 초과하고 있었다. 2) 사건의 경과 검사는 갑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가법’이라 한다)’위반죄(사기)로 기소했다. 갑의 피고사건은 제1심을 거쳐 항소심에 계속됐다. 항소심법원은 갑이 편취한 B대지의 가액을 산정함에 있어 B대지의 시가에서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액이 아닌 채권최고액을 공제하여 나머지 6억 2,600만원을 그 가액이라고 보고 특경가법 제3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해 처단했다. 갑은 보다 많은 금액인 피담보채권액을 시가에서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상고했다. 그런데 항소심의 판단 자체는 특경가법의 ‘이득액’ 산정에 있어서 부동산의 객관적인 시가를 기준으로 하던 종전의 대법원판례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보충의견 1인 포함 10인)과 소수의견(3인)으로 견해가 나뉘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 따라 종전의 판례를 변경했다. 3) 다수의견 요지 사람을 기망하여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받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전받게 함으로써 이를 편취한 경우에 특경가법 제3조의 적용을 전제로 하여 그 부동산의 가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는, 그 부동산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 때에는 그 부동산의 시가 상당액이 곧 그 가액이라고 볼 것이지만, 그 부동산에 근저당권설정등기가 경료되어 있거나 압류 또는 가압류 등이 이루어져 있는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아무런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의 그 부동산의 시가 상당액에서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 범위 내에서의 피담보채권액, 압류에 걸린 집행채권액, 가압류에 걸린 청구금액 범위 내에서의 피보전채권액 등을 뺀 실제의 교환가치를 그 부동산의 가액으로 봐야 할 것이다(상고 기각). 4) 판례의 의의 특경가법은 이득액을 기준으로 형벌을 가중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된 이득액을 기준으로 형을 가중하는 데에 대해, 그리고 그 가중의 정도가 매우 높다는 데에 대하여 그동안 지속적으로 비판이 제기돼 왔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특경가법 제3조’를 적용함에 있어서는 편취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가액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산정함으로써, 범죄와 형벌 사이에 적정한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죄형균형 원칙이나 형벌은 책임에 기초하고 그 책임에 비례하여야 한다는 책임주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여 그동안의 비판을 수용했다. 특경가법의 적용범위를 대폭 제한한다는 점에서 본 판례는 앞으로 형사실무에 적지 않은 파급효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부동산취득과 관련한 이득액의 산정에 있어 당해 부동산의 시가,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 피담보채권액 등의 표지에 주목하면서 부동산의 시가에서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을 공제하도록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에는 피담보채권액이 고려항목으로 채택되고 있지 않다. 피담보채권액의 규모가 가공적인 채권의 등장 등으로 부풀려질 염려가 있음을 대법원이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6. 컴퓨터등사용사기죄와 친족상도례 (2007. 3. 15. 2006도2704, 공 2007, 578) 1) 사실관계 갑은 절취한 친할아버지 A 소유의 농업협동조합 예금통장을 현금자동지급기에 넣고 조작하는 방법으로 A 명의 농업협동조합 계좌의 예금 잔고 중 57만원을 갑 명의의 국민은행 계좌로 이체하였다. 검사는 갑을 컴퓨터등사용사기죄로 기소했다. 제1심법원은 갑에게 유죄를 인정하였다. 갑은 이에 불복, 항소했다. 항소심법원은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여 갑에게 형 면제를 선고했다. 검사는 항소심판결에 불복, 상고했다. 2) 판결 요지 (전략)따라서 친척 소유 예금통장을 절취한 피고인이 그 친척 거래 금융기관에 설치된 현금자동지급기에 예금통장을 넣고 조작하는 방법으로 친척 명의 계좌의 예금 잔고를 피고인이 거래하는 다른 금융기관에 개설된 피고인 명의 계좌로 이체한 경우, 그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는 이체된 예금 상당액의 채무를 이중으로 지급해야 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그 친척 거래 금융기관이라 할 것이고, 거래 약관의 면책조항이나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법리 적용 등에 의하여 위와 같은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최종적으로는 예금 명의인인 친척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하여, 자금이체 거래의 직접적인 당사자이자 이중지급 위험의 원칙적 부담자인 거래 금융기관을 위와 같은 컴퓨터 등 사용사기 범행의 피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에는 친족 사이의 범행을 전제로 하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파기 환송). 3) 판례의 의의 본 판례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용되는 계좌이체와 친족상도례의 관계를 밝힌 점에서 주목된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권한없이 예금 잔고를 계좌이체하는 경우에 대해 피해자가 금융기관임을 분명히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의 경우에 친족상도례가 적용될 여지가 없음을 밝혀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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