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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목소리 재판에 적극 반영 움직임
피해자 목소리 재판에 적극 반영 움직임 “피고인만 보고 피해자는 못본다”지적 잇달아 개정 형소법도 피해자의 진술권 폭 넓게 인정 합의의 진의 여부도 피해자에게 분명히 확인 서울고법 302호 형사법정. 강도강간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모(30)씨의 결심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정씨는 작년 길을 걸어가고 있던 20대 여성을 목졸라 실신시킨 후 금품을 뺏고 강간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항소한 상태였다. 정씨는 “강간이나 강도를 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었고, 술에 취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공판이 마무리 될 무렵 재판장이 짧은 침묵을 깨고 물었다. “혹시 피해자나 그 가족분들 나와계십니까?” 20대의 여성이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 다름아닌 피해여성이었다. 재판장은 하고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한다. 법정 앞으로 나온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면서 “피고인의 가족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고 얘기해 합의를 해주긴 했는데 법정에 나와 정씨가 술 마셔서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결국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정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3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죄질이 좋지 않고 범행으로 피해자가 극심한 공포와 정신적인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며, 또 아직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실형선고 이유를 밝혔다.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와 충분히 합의해 은근히 집행유예 또는 감형을 기대한 정씨의 바람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이처럼 최근 법원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재판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움직임이 일고있다. ◇ 개정 형소법 ‘피해자 권익’ 강화 영향= 이는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이 피해자의 권익을 대폭 강화시켜 놓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동안 법원이 ‘피고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 재판에 초점을 맞춰오자,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피고인만 보고 피해자는 보지 못한다”며 ‘피해자의 인권’을 좀더 적극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개정 형소법은 형사피해자의 진술권을 보장한 헌법 제27조5항의 정신을 존중, 진술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대폭 개정했다. 즉 피해자 법정진술권의 신청주체를 피해자 이외에 법정대리인으로까지 확대했으며,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耽蝸Ａ?형제자매도 법정진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과거에는 수사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한 경우에는 진술권을 배제해왔으나 개정법은 이런 경우에도 재판과정에서 또다시 진술할 수 있도록 해 과거에 비해 피해자 진술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형소법은 피해자 등의 ‘신청이 있는 때’에 진술권을 보장해 주도록하고 있으나, 이 사건 재판부가 피해 여성에게 준 진술기회는 일반적인 증인신문과는 달리 단지 ‘말할 기회’를 준 것으로서 신청이 없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자의 의견을 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공판을 진행하면서 피해자가 신청하지 않아도 법정에 나왔는지 확인한 후 진술할 기회를 준다”며 “진술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 경우는 2~3건에 불과하고 오히려 피해자측에서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등 피해자도 할 말을 다 하고나면 후련해 하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서면으로 제출한 합의서가 있더라도 법정에서 하는 피해자의 얘기가 다르다면 이를 참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피해자 진술 적극적 청취’ 찬반 팽팽= 피해자나 피고인 혹은 검찰의 신청이 없더라도 법정에서 즉흥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을 듣는 것에 대해 법원 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피해자를 위한’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의견과 오히려 피해자의 인권침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법원이 피고인의 인권을 챙기느라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데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법이라는 것은 나쁜 사람들은 처벌된다는 믿음을 줘야 하는 것인데 피해자들이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법원에 대한 불신감을 키울 수 있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도 “합의를 했다고는 해도 그 합의의 진의여부는 반드시 피해자에게 확인해야 할 문제”라며 “피고인의 가족들이 애원한다던가 아니면 돈은 나중에 줄테니 일단 합의만 해달라고 협박 비슷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오히려 피해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반박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법정에서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불러세우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다”며 “특히 성폭력 등의 피해자는 더욱 민감한 문제로 재판부가 피해자를 두번 죽인다는 비난을 받을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엄자현 기자 mini@lawtime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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