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명예훼손에 대한 위자료가 점차 ‘고액화’되고 있다.

이는 피해자의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현재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위자료 액수가 턱없이 부족한 만큼 위자료 액수를 더욱 높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판사들 사이에 형성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위자료 고액화’는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신정아씨 사건에 위자료 사상 최고 인정=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는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을 게재해 인격권침해, 명예훼손에 대해 논란을 일으켰던 문화일보에 대해 “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인정한 순수 위자료 액수로는 역대 최고 금액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이전에도 1억2,000만원과 2억원을 인정했던 사건들이 1건씩 있었으나 이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매출감소, 영업손실 등의 재산적 손해까지 포함해 인정했던 액수였다”며 “명예훼손만을 이유로 1억원 이상이 인정됐던 적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액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언론에 의해 인격권이 침해되는 경우 그 실질적인 원상회복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며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달래고 비난받을 언론사의 행위를 민사적으로 처벌하면서 언론사에 경각심을 줘 재발을 방지하려면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위자료를 고액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사죄광고 위헌결정 후 점차 증가세= 지금까지 법원이 인정한 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자료 액수는 1,000만~3,000만원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위자료 금액이 고액화 되면서 5,000만원 이상이 11건, 억대가 넘는 것도 5건이나 나왔다. 이는 법원이 지난 91년 헌법재판소가 ‘사죄광고’에 대해 위헌결정을 하기 이전에 인정했던 위자료 액수가 대부분 1,000만원 이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제재수단으로 사죄광고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위자료 액수가 증가한 영향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실례로 법원은 ‘임재정은 중정부 출신’, ‘이종찬 운동원 조폭 일원’ 등 4건의 사건에서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 ‘○○○의 20세 연하 여동생은 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악성루머를 일으켰던 언론사에 대해서는 6,000만원을, ‘중학교 교장이 집단 괴롭힘 방치해’라는 기사에 대해서는 7,9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하기도 했다. 1억원 이상의 고액 위자료를 인정했던 사건은 현재까지 4건이다.

지난 99년 뉴스앵커였던 백지연씨의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고 보도했던 언론사와 ‘○○○검사 납득 못할 영장기각’이라는 기사를 실었던 언론사에 대해 법원은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사건 모두 후에 전혀 사실무근으로 밝혀져 당시 사실확인을 게을리한 언론사의 취재관행에 철퇴를 내렸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또 ‘김대중 前대통령 용공·친북인사' 기사에 대해 1억2,000만원, ‘한약업자, 김현철에게 정치자금 1억원 전달’ 기사에 관해서는 위자료로 4억원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명예훼손으로 인해 영업손실, 매출감소 등의 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상도 포함됐던 것인 만큼 이번 신정아 누드사진 게재사건에 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한 것은 위자료를 높이려는 법원의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인격권 침해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은 명예훼손, 프라이버시권 침해, 초상권 침해의 순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청구금액에 비해 인정되는 금액의 비율은 적으나 최근에는 청구금액 수준에 맞춰 위자료 금액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액수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고, 초상권 침해나 프라이버시권 침해의 경우 위자료 액수도 적지 않다”며 “막대한 힘을 가진 언론의 폐해를 우려하는 여론, 인격권을 보호하려는 법원의 의지, 사죄광고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점,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을 주장하는 법조계 일각의 태도, 법원 외에는 언론의 횡포를 견제할 기관이 없다는 공감대, 피해자의 권리의식 제고와 언론사의 경제적 규모의 증가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위자료는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언론사의 규모, 경제력, 파급효과 등 여러사정 고려해야= 그러나 ‘위자료 고액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교통·산재·의료사건 등의 경우, 일실이익 등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수 있는 기준이 정형화돼 있으나 명예훼손의 경우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 수도 없고 마련하기도 힘들다”며 “지나친 고액은 국민 여론으로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고 또 이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언론사에 지나친 부담을 가져오는 또 다른 폐해를 낳을 수 있는 만큼 5,000만원 이상의 고액 위자료는 위자료의 보완적 기능을 위한 것이 아닌 한 가급적이면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최근에는 중앙일간지 등 주요 언론사의 경우 언론사 자체적으로 정화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미리 걸러내는 경우도 많으며 분쟁이 있더라도 법원 전에 언론중재위에서 해결되는 경우도 50% 이상이 된다”며 “명예훼손 위자료를 산정할 때는 언론사의 규모, 영향력, 파급효과 등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