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게 올 한해는 최초로 헌법연구관을 대법원에 파견하고 새로운 인물을 대폭 영입, 직제를 새롭게 개편하는 등 변화를 꾀한 시기였다. 특히 헌재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성공리에 개최, 전세계적으로 헌법재판소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종부세사건과 간통죄 등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처리하면서 다시한번 헌재의 입지를 확인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만수 장관의 ‘헌재접촉발언’에 휘말려 신뢰도 1위인 헌재의 명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또 대법원이 합헌으로 해석한 법조항에 대해 한정위헌결정을 내리면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할문제에 다시 불을 당겼다.

◇ 헌법재판소 20주년= 헌법재판소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헌재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용훈 대법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에서 이강국 헌재소장은 “성년이 된 헌재는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세계 30개국과 6개 헌법재판관련 협의체가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개최, ‘21세기의 권력분립과 헌법재판’이라는 주제로 발표와 토의를 가졌다. 헌법재판소의 CI가 제작되고 헌법재판소20년사 등 발간사업도 활발히 진행됐다. ◇ 1국 2과 신설= 올해 초 헌법재판소는 이사관 1명과 서기관 2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을 증원, 1국(행정관리국) 2과(제도기획과, 정보화기획과)를 신설하고 법조인을 사무처 인력으로 채용했다. 또 종래 1급 공무원이 맡아왔던 기획조정실장을 법조인이 맡도록 하고 공모를 통해 신동승(48·연수원 15기) 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를 임명했다.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헌법재판의 조사·연구에 종사하는 헌법연구관이 행정업무에도 관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헌법연구관이 공보업무를 겸하도록 했다. 첫 헌법연구관 겸 공보관에는 김복기(연수원 29기) 연구관이 임명됐다. ◇ 외부인력 대폭 영입= 올 한해 헌법재판소는 외부인력을 대폭 영입하면서 변신을 꾀했다. 신동승 부장판사를 선임부장연구관 겸 기획조정실장을 임명한데 이어 법원으로부터 파견받은 유남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수석부장연구관으로, 김상환 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를 부장연구관으로 임명했다. 아울러 헌재는 올해 처음으로 노희범 헌법연구관을 대법원에 파견해 그동안의 헌법소송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상고심 재판의 전문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종부세 사실상 유명무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이번 한해동안 사회적인 이슈를 몰고 다녔다. 특히 이른바 종합부동산세 사건은 종부세 자체를 폐지 또는 축소하려는 정부의 입장변화와 맞물려 시종일관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청구인측은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정부는 ‘주택가격 안정정책’이라고 맞섰으나 10월 정부가 입장을 바꿔 위헌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11월13일 특별선고기일을 열어 종부세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을 내렸으나 세대별 합산규정에 대해서는 위헌을 선고, 사실상 종부세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 강만수 장관 ‘헌재접촉발언’= 종부세사건 선고를 앞두고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헌재접촉’발언으로 큰 파문을 불러오기도 했다. 지난 11월 강 장관은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의에 대한 답변과정에서 “헌재와 접촉했고 세대별 합산은 위헌으로 갈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국회는 부적절한 접촉이 있었는지 등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헌재는 “기획재정부장관이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와 접촉했다’는 등의 매우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 객관적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함으로써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에 우려를 자아낼 수 있는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심각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공개변론 일정 공개= 헌법재판소는 올해 최초로 공개변론 일정을 공개하는 등 공개변론 활성화에 나섰다. 심리일정을 미리 공개해 변론단계에서부터 전문가나 시민단체, 언론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헌법재판소 사건의 특성상 시대의 흐름을 따라 가치의 중요성 등이 법리적인 논거 외에 결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어진 변론시간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에 집중하는 변론은 개선돼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 ‘사회적 이슈’ 잇따라 헌재로= 연예인 옥소리씨 사건으로 더 관심이 집중됐던 ‘간통죄’ 위헌제청사건은 헌재에서 네번째 합헌 판단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10월 형법 제241조에 대해 낸 위헌제청사건에서 재판관 4(위헌) : 1(헌법불합치) : 4(합헌)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시각장애인만 안마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 의료법 조항도 사실상 올해 세번째 결정을 받으면서 합헌으로 결론이 났다. 이외에도 태아성감별금지조항은 21년만에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았다. ‘BBK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헌재는 지난 1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동행명령제관련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 3년 만에 다시 한정위헌결정= 대법원과의 논쟁 때문에 한동안 적극적으로 한정위헌결정을 내리지 않던 헌재가 3년 만에 다시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특히 올해 내린 한정위헌결정 중 구 상속세법 제18조1항에 대한 한정위헌결정은 대법원판결과 어긋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사망한 부친의 재산을 상속받은 박모씨가 상속세납부의무를 규정한 구 상속세법 제18조1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사건(2003헌바10)에서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구 상속세법상 상속인을 상속개시전에 상속재산가액에 가산되는 재산을 증여받고 상속을 포기한 자가 포함되지 않는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며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특히 이번 헌법소원사건의 청구인이 낸 행정소송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대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법원은 ‘법률해석은 법원의 고유권한으로 헌재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 1997년 12월 한정위헌결정을 포함한 위헌법률을 적용한 재판의 경우 헌법소원의 대상에 해당된다며 예외적으로 재판소원을 인정하고 대법원판결을 취소한 전례가 있다(96헌마172).

엄자현 기자 mini@lawtimes.co.kr